운치란 이런것이다... 를 알려주는 운림산방 | 진도 | 02Mar2014
명승 제80호 운림산방은 남화의 대가 소치(小痴) 허련(許鍊)이 말년에 머물던 화실로 운림각이라고도 한다.
들어가는 입구의 연못부터가 아.. 하는 감탄을....
연못에 비춰진 산의 그림자가 예술이다......
봄에 배롱나무에 꽃(백일홍)이 피면 더욱 멋지겠지...... 빨간색 추가....
나도 여기 앉아있음 절로 그림을 잘 그릴 듯하다.
연못을 지나면 생가, 운림사, 소치기념관, 진도기념관등을 볼수 있고 운림사에는 소치의 영정과 소치의 스승이었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목판이 있다..
소치기념관 앞엔 빨간 동백꽃이 한참이다........
지구상의 하나밖에 없는 살아있는 미술관..... 이라고 했다.....
- 진도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
운림산방은 첨찰산을 깃봉으로 수 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 깊은 산골에 아침 저녁으로 연무가 운림(雲林)을 이루었을 것이고, '연화부'를 지었던 소치의 사상으로도 운림(雲林)이라는 당호(堂號)가 걸 맞았을 것이다.
1981.10.29. ~ 2011. 8. 7. 전라남도지정기념물 제51호 2011. 8. 8. 국가지정명승 제80호 지정
이곳에서 소치(小痴)는 미산(米山) 허형을 낳았고 미산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의재 허백련이 미산에게 처음으로 그림을 익힌 곳이기도 하다.
이와같이 유서깊은 운림산방은 소치(小痴) - 미산(米山) - 남농(南農) - 임전(林田) 등 5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어준 한국 남화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전통남화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운림산방은 조선조 남화의 대가인 소치(小痴) 허유(維)가 말년에 거처하던 화실의 당호로 일명 '운림각'이라고 한다. 소치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호를 붙여준 것이며 젊었을때는 련(鍊)이라 했고 자는 마힐(痲詰)이다. 운림산방, 쌍계사, 상록수림이 한데 어우러진 이곳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운림산방에서 약 150m를 오르면 1995년 8월 15일에 세워진 진도아리랑비가 아담하게 서있다.
소치는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허각의 5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나 1893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소치는 어려서 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어 28세 때부터 두륜산방(현, 해남 대흥사)의 초의대사(草衣大師 : 張意恂) 밑에서 공재 윤두서의 화첩을 보면서 그림을 익히기 시작하여 33세때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 밑에서 본격적인 서화수업을 하게된다. 비록 낙도에서 태어났으나 천부적인 재질과 강한 의지로 시(詩), 서 (書), 화(畵)에 능하여 40세 되던 1847년 7월 낙선재에서 헌종을 뵐 수가 있었고 헌종이 쓰는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는가 하면 흥선대원군, 권돈인, 민영익, 정학연 등을 비롯하여 권문세가들과 어울리면서 시를 짓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렸다. 1856년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소치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첨찰산 아래 쌍계사 남쪽에 자리를 잡아 집을 짓고 화실을 만들어 여생을 보냈다.
운림산방 앞에 있는 연못은 한면이 35m 가량되며, 그 중심에는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둥근 섬이 있고 여기에는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 한 그루가 있다. 소치가 서화에 뛰어나 민영익은 '묵신(墨神)'이라 했으며 정문조는 여기에 시를 더하여 삼절(三節)이라 하였고, 김정희는 중국 원나라 4대화가의 한 사람인 황공망을 '대치(大痴)'라 했는데 그와 견줄만 하다고 소치(小痴)라 했다고 한다.
참고자료 : 남농기념관
운림산방 동백과 더불어 쌍계사가는 길목에 아주 탐스럽게 핀 홍매를 덤으로 만났다....
3월초이른 봄에....
↓ 소치 영정
↓ 추가 김정희의 세한도 목판
↓ 운림산방이라 적혀있는 생가
↓ 진도역사관 용장산성을 보니 언제 진도에 와서 용장산성을 걷고싶은 맘이.... 진도는 울돌목, 명량대첩으로 유명하지만 유배지로도 유명하다...